THE PERSON OF WESTERN HISTORY

서양미술사에 대한 모든 주제를 다루기에는 너무 폭이 넓어 핀 수 50개 이후 부터는 화면 속 그림에 나오는 인물들을 제 시각적 관점과 인터넷의 해설의 관점을 섞어 표현하도록 할 것 입니다. 미술 그림 속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한 평가를 저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저의 세부적인 주제는 미술 작품에 들어난 인물에 대한 해석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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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를 걸친 젊은 소년이 더러운 맨발로 방 한 구석에서 햇빛에 비춰가며 자기 몸의 이를 잡고 있다.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은 그의 빈곤을 더더욱 생생하게 만든다. 인위적 포즈의 연출이 아닌 자연스러운 소년의 자세와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으로 인해 보는 이로 하여금 뜻 모를 감동을 느끼게 한다. 이 그림은 무리요가 평생에 걸쳐 제작하는 서민들의 생활을 주제로 한 작품군의 서막을 알리는 작품이다. 작품 속 그의 기법은 여전히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의 테네브리즘(Tenebrism) 기법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이 기법은 어두운 톤이 주조를 이루고 극적 효과를 위해 강한 빛을 삽입시켜 대비를 이루도록 하기 위해 사용한다. 이후로 갈수록 그의 기법은 좀 더 부드러워지며 따뜻한 느낌으로 바뀌게 된다. 황금 시대에 스페인 화가들이 완벽하게 구사했던 이러한 양식은 19세기의 프랑스 화가들을 매혹시켰다.

누더기를 걸친 젊은 소년이 더러운 맨발로 방 한 구석에서 햇빛에 비춰가며 자기 몸의 이를 잡고 있다.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은 그의 빈곤을 더더욱 생생하게 만든다. 인위적 포즈의 연출이 아닌 자연스러운 소년의 자세와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으로 인해 보는 이로 하여금 뜻 모를 감동을 느끼게 한다. 이 그림은 무리요가 평생에 걸쳐 제작하는 서민들의 생활을 주제로 한 작품군의 서막을 알리는 작품이다. 작품 속 그의 기법은 여전히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의 테네브리즘(Tenebrism) 기법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이 기법은 어두운 톤이 주조를 이루고 극적 효과를 위해 강한 빛을 삽입시켜 대비를 이루도록 하기 위해 사용한다. 이후로 갈수록 그의 기법은 좀 더 부드러워지며 따뜻한 느낌으로 바뀌게 된다. 황금 시대에 스페인 화가들이 완벽하게 구사했던 이러한 양식은 19세기의 프랑스 화가들을 매혹시켰다.

파로셀은 루이 14세를 위해 베르사이유 궁전 및 마를리 궁에서 일했던 화가 조제프 파로셀의 아들이었으며, 화가가 되기 전에 군에서 복무했던 경험을 살려 전쟁화를 전문적으로 그리게 되었다. 왕세자의 방을 장식할 작품을 주문받았던 1744년에 그는 전쟁을 주제로 하는 또 다른 작품 의뢰를 받게 되었다. 루이 15세가 고모인 콩티 공주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소유였던 슈아지 성을 사들이면서 성의 실내를 새롭게 장식할 작품들을 주문했던 것이다. 새로운 실내장식에 쓰일 그림들을 그에게 주문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제작된 이 두 작품은 전쟁터의 야영지와 말들을 훌륭히 표현해 내는 파로셀의 솜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파로셀은 루이 14세를 위해 베르사이유 궁전 및 마를리 궁에서 일했던 화가 조제프 파로셀의 아들이었으며, 화가가 되기 전에 군에서 복무했던 경험을 살려 전쟁화를 전문적으로 그리게 되었다. 왕세자의 방을 장식할 작품을 주문받았던 1744년에 그는 전쟁을 주제로 하는 또 다른 작품 의뢰를 받게 되었다. 루이 15세가 고모인 콩티 공주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소유였던 슈아지 성을 사들이면서 성의 실내를 새롭게 장식할 작품들을 주문했던 것이다. 새로운 실내장식에 쓰일 그림들을 그에게 주문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제작된 이 두 작품은 전쟁터의 야영지와 말들을 훌륭히 표현해 내는 파로셀의 솜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행인들에게 구걸하고 있는 이 거리의 악사는 분홍빛 바지, 투명한 스타킹, 초록 버튼이 달린 상의, 목에 주름이 잡힌 흰색 셔츠, 깨끗한 회색 망토, 그리고 두 개의 깃털이 달린 빨간 모자 등 제대로 된 복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가 거의 빠지고 없는 크게 벌린 입과 뒤틀린 얼굴의 사실적인 표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이 거리의 악사의 힘든 생활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밀랍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둥글고 뭉툭한 손과 넓고 편평한 느낌의 허벅지 표현은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는 라 투르만의 특징적인 세부 표현이다. 또한 결코 주인공과 어울리지 않는 바닥에 놓여진 화려한 붉은 모자를 통해 장식적인 묘사를 즐겼던 그의 매너리즘적인 작품 세계를 읽을 수 있다.

행인들에게 구걸하고 있는 이 거리의 악사는 분홍빛 바지, 투명한 스타킹, 초록 버튼이 달린 상의, 목에 주름이 잡힌 흰색 셔츠, 깨끗한 회색 망토, 그리고 두 개의 깃털이 달린 빨간 모자 등 제대로 된 복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가 거의 빠지고 없는 크게 벌린 입과 뒤틀린 얼굴의 사실적인 표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이 거리의 악사의 힘든 생활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밀랍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둥글고 뭉툭한 손과 넓고 편평한 느낌의 허벅지 표현은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는 라 투르만의 특징적인 세부 표현이다. 또한 결코 주인공과 어울리지 않는 바닥에 놓여진 화려한 붉은 모자를 통해 장식적인 묘사를 즐겼던 그의 매너리즘적인 작품 세계를 읽을 수 있다.

주제를 비롯한 이 작품의 독창적인 특징에 대해서는 이미 다양하게 거론되었다. 특히 양초에 대해서는 단지 회화적인 효과를 얻고자 표현한 것만으로는 보고 있지 않다. 두 인물의 뒷편 중앙에 놓여 있는 양초의 빛은 왼쪽의 아이에게 집중 조명되어 있다. 즉 요셉의 얼굴과 천사로 보이는 아이의 얼굴에 들어오는 조명은 마치 천상의 빛을 받고 있는 듯 밝기에서 큰 차이가 있는데, 이는 위치, 거리, 각도 모두를 고려해볼 때, 분명 작가의 의도된 표현임을 알 수 있다. 무언가 희망적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소녀의 모습을 꿈꾸는 요셉에 비해 밝게 표현한 것이다. 희망에 가득 찬 어린이와 운명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의 노인을 대치하듯 배치하였다. 소년도 소녀도, 현실의 존재도 비현실의 존재도 아닌 천사는 상상의 옷을 걸친 모습으로,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시정(詩情)을 작품에 부여하고 있으며, 촛불 앞에 있는 성인의 모습을 빛과 그림자의 대조를 통해 훌륭하게 표현하였다.

주제를 비롯한 이 작품의 독창적인 특징에 대해서는 이미 다양하게 거론되었다. 특히 양초에 대해서는 단지 회화적인 효과를 얻고자 표현한 것만으로는 보고 있지 않다. 두 인물의 뒷편 중앙에 놓여 있는 양초의 빛은 왼쪽의 아이에게 집중 조명되어 있다. 즉 요셉의 얼굴과 천사로 보이는 아이의 얼굴에 들어오는 조명은 마치 천상의 빛을 받고 있는 듯 밝기에서 큰 차이가 있는데, 이는 위치, 거리, 각도 모두를 고려해볼 때, 분명 작가의 의도된 표현임을 알 수 있다. 무언가 희망적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소녀의 모습을 꿈꾸는 요셉에 비해 밝게 표현한 것이다. 희망에 가득 찬 어린이와 운명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의 노인을 대치하듯 배치하였다. 소년도 소녀도, 현실의 존재도 비현실의 존재도 아닌 천사는 상상의 옷을 걸친 모습으로,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시정(詩情)을 작품에 부여하고 있으며, 촛불 앞에 있는 성인의 모습을 빛과 그림자의 대조를 통해 훌륭하게 표현하였다.

이 작품은 조르주 드 라 투르가 작품의 구조와 인물들에 대한 관심을 조화롭게 표현하여 아름답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림으로, 실제로 그의 작품들 중에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이 그림 속에서 그는 밤의 빛이 가지고 있는 형언하기 힘든 ‘신성한 느낌’을 순수하게 보여줌으로써, 종교적인 주제를 실제 현실에서 실감할 수 있을 법한 묘사를 통해 묘한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다.     《갓난 아기》라는 모티프는 종교를 믿는 자나 그렇지 않은 자들 모두를 보듬을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진 존재인데, 실제로 아기가 탄생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늘 놀라움과 기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조르주 드 라 투르가 작품의 구조와 인물들에 대한 관심을 조화롭게 표현하여 아름답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림으로, 실제로 그의 작품들 중에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이 그림 속에서 그는 밤의 빛이 가지고 있는 형언하기 힘든 ‘신성한 느낌’을 순수하게 보여줌으로써, 종교적인 주제를 실제 현실에서 실감할 수 있을 법한 묘사를 통해 묘한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다. 《갓난 아기》라는 모티프는 종교를 믿는 자나 그렇지 않은 자들 모두를 보듬을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진 존재인데, 실제로 아기가 탄생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늘 놀라움과 기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산양 앞에는 어린 요정이 산양을 인도하려는 듯이 보인다. 주인공들의 어색한 모습과 얼어붙은 듯한 구도는 고대와 당대 조각의 영향 때문으로 추측된다. 흰색과 검은 색 산양 두 마리가 마차를 끌고 있는데, 산양의 존재는 아마도 산양의 젖을 먹고 자란 제우스의 어린 시절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널리 유행했던 전원 취미와 귀족의 습관을 동시에 표현하는 소재이다. 가로 세로가 2미터가 넘는 작품의 크기와 화려함, 그리고 현란한 회화적 묘사는 이 작품을 화려하고 인상적인 초상화로 만들고 있으며, 인망이 높았던 암스테르담의 트립가(家)의 호화로운 저택을 장식하는 데 적합했다. 1830년대 암스테르담에서 렘브란트에게 사사받은 수제자 중 한명으로 거론되는 페르디난트 볼은 역사화, 인물화, 정물화 등에서 출중한 기량을 선보였고, 이렇게 2미터가 넘는 대작을 주문받을 수 있었다.

산양 앞에는 어린 요정이 산양을 인도하려는 듯이 보인다. 주인공들의 어색한 모습과 얼어붙은 듯한 구도는 고대와 당대 조각의 영향 때문으로 추측된다. 흰색과 검은 색 산양 두 마리가 마차를 끌고 있는데, 산양의 존재는 아마도 산양의 젖을 먹고 자란 제우스의 어린 시절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널리 유행했던 전원 취미와 귀족의 습관을 동시에 표현하는 소재이다. 가로 세로가 2미터가 넘는 작품의 크기와 화려함, 그리고 현란한 회화적 묘사는 이 작품을 화려하고 인상적인 초상화로 만들고 있으며, 인망이 높았던 암스테르담의 트립가(家)의 호화로운 저택을 장식하는 데 적합했다. 1830년대 암스테르담에서 렘브란트에게 사사받은 수제자 중 한명으로 거론되는 페르디난트 볼은 역사화, 인물화, 정물화 등에서 출중한 기량을 선보였고, 이렇게 2미터가 넘는 대작을 주문받을 수 있었다.

피터르 파울 루벤스는 익시온이 주노의 모습을 본 딴 구름을 껴안는 순간을 그리기 위해, 실제로 접촉할 수 있을 것 같은 육체를 화면 왼쪽에 배치했다. 오른쪽에는 진짜 주노가 하늘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남편 유피테르에게 가기 위해 몸을 일으키고 있다. 익시온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른 채 허상의 주노를 품에 안고 있다. 루벤스는 두 여성 중 어느 쪽이 진짜 주노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그녀의 상징인 공작을 화면에 배치하였다.

피터르 파울 루벤스는 익시온이 주노의 모습을 본 딴 구름을 껴안는 순간을 그리기 위해, 실제로 접촉할 수 있을 것 같은 육체를 화면 왼쪽에 배치했다. 오른쪽에는 진짜 주노가 하늘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남편 유피테르에게 가기 위해 몸을 일으키고 있다. 익시온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른 채 허상의 주노를 품에 안고 있다. 루벤스는 두 여성 중 어느 쪽이 진짜 주노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그녀의 상징인 공작을 화면에 배치하였다.

이 작품은 마치 전원시를 눈앞에 보는 듯, 아름다운 풍경 속에 신화의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이 주제는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Vergilius)의 ‘아에네아스(Aineis)’로부터 따온 것이다. 이 대서사시는 로마의 신화와 관련되어 있는데, 호메로스(Hómēros)의 일리아드(Iliade)와 오디세이(Odyssée)에서 영감을 받아 지어졌다.

이 작품은 마치 전원시를 눈앞에 보는 듯, 아름다운 풍경 속에 신화의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이 주제는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Vergilius)의 ‘아에네아스(Aineis)’로부터 따온 것이다. 이 대서사시는 로마의 신화와 관련되어 있는데, 호메로스(Hómēros)의 일리아드(Iliade)와 오디세이(Odyssée)에서 영감을 받아 지어졌다.

헨드리키에 스토펠스는 사스키아 판 오일렌부르크, 헤르트헤 디르크와 더불어 네덜란드 바로크의 거장 렘브란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 세 여인 중 하나다. 1626년 브레데포르트에서 태어났고 그녀의 예술적 공헌을 기려서 현재 그곳에는 그녀의 수수한 동상이 세워져 있다. 렘브란트와 스무 살이나 차이 나는 헨드리키에는 처음에 하녀로 고용되었지만, 곧 그림 모델이 되고 뒤이어 인생의 반려가 되었다. 렘브란트가 그린 그림 가운데 적어도 여덟 점이 헨드리키에를 모델로 하고 있는데,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사례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헨드리키에 스토펠스는 사스키아 판 오일렌부르크, 헤르트헤 디르크와 더불어 네덜란드 바로크의 거장 렘브란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 세 여인 중 하나다. 1626년 브레데포르트에서 태어났고 그녀의 예술적 공헌을 기려서 현재 그곳에는 그녀의 수수한 동상이 세워져 있다. 렘브란트와 스무 살이나 차이 나는 헨드리키에는 처음에 하녀로 고용되었지만, 곧 그림 모델이 되고 뒤이어 인생의 반려가 되었다. 렘브란트가 그린 그림 가운데 적어도 여덟 점이 헨드리키에를 모델로 하고 있는데,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사례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그랑 트리아농을 장식했던 작품 중 하나이다. 루이 14세는 수많은 궁정 인사들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고, 베르사이유의 허영과 허식으로부터 몸을 피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하여, 1686년에 도자기 타일로 장식되어 있던 트리아농 궁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대리석으로 된 그랑 트리아농을 짓도록 했다. 완공 직후인 1688년부터 궁 장식을 위한 여러 회화 작품 제작이 화가들에게 의뢰되었으나, 1689년에 발발한 아우크스부르크 동맹 전쟁 때문에 그 제작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그랑 트리아농을 장식했던 작품 중 하나이다. 루이 14세는 수많은 궁정 인사들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고, 베르사이유의 허영과 허식으로부터 몸을 피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하여, 1686년에 도자기 타일로 장식되어 있던 트리아농 궁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대리석으로 된 그랑 트리아농을 짓도록 했다. 완공 직후인 1688년부터 궁 장식을 위한 여러 회화 작품 제작이 화가들에게 의뢰되었으나, 1689년에 발발한 아우크스부르크 동맹 전쟁 때문에 그 제작이 중단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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