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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우, '사상과 현실' 읽기 편한 전자책 판매 2차 직판 이벤트 준비 중. @booktweeter @ilpyung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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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아간 이미지 고유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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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46. 12. 12. (2)

박치우의 사상과 현실에 대한 박종홍의 서평 (경향신문, 1946년 1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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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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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복제방지 락을 제거한 전자책을 이벤트 기간 동안 직접 판매합니다.

1946년 2월 누가 국수주의적 파시스트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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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1946년 2월 8일 9일 양일에 걸쳐 서울 YMCA 강당에서 조선문학자대회가 열렸다.   박치우가 <국수주의의 파시즘화의 위기와 문학자의 임무>라는 특별보고를 한 후에 바로 이어서 다음과 같이 결의가 있었다고 자유신문 1946년 2월 9일자가 다음과 같이 알려 주고 있다.  "해방후 문학자들의 최초의 전국적 모임 전국문학자대회(1946년 2월 9일) 각 부문 보고연설에서 박치우가 국수주의의 파시즘화위기와 문학자의 임무>라는 특별보고를 하였다. 국수주의와 파시즘이 아직도 민족전선통일에 대두하야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지금에 있어서 우리 문학자들은 민주주의의 훈련을 쌓아야 하며 민주주의의 병졸로서 투쟁하여야 한다는 안을 긴급동의로 결의하야 결의안을 김남천씨가 낭독하니 맹원일동은 박수로 통과시키었다."(자유신문, 1946년 2월 9일)  #박치우 #사상과현실

5/8. 1946년 2월 8일 9일 양일에 걸쳐 서울 YMCA 강당에서 조선문학자대회가 열렸다. 박치우가 <국수주의의 파시즘화의 위기와 문학자의 임무>라는 특별보고를 한 후에 바로 이어서 다음과 같이 결의가 있었다고 자유신문 1946년 2월 9일자가 다음과 같이 알려 주고 있다. "해방후 문학자들의 최초의 전국적 모임 전국문학자대회(1946년 2월 9일) 각 부문 보고연설에서 박치우가 국수주의의 파시즘화위기와 문학자의 임무>라는 특별보고를 하였다. 국수주의와 파시즘이 아직도 민족전선통일에 대두하야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지금에 있어서 우리 문학자들은 민주주의의 훈련을 쌓아야 하며 민주주의의 병졸로서 투쟁하여야 한다는 안을 긴급동의로 결의하야 결의안을 김남천씨가 낭독하니 맹원일동은 박수로 통과시키었다."(자유신문, 1946년 2월 9일) #박치우 #사상과현실

[예고편] 19금 아닙니다. 18세부터 읽을 수 있습니다. 박치우, [사상과 현실] 출판사 직판 2차 이벤트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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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태공공성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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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우, (전자책 epub 이펍)을 7월 31일까지만 출판사에서 직접 판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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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우는 누구인가? 박치우는 경성제대 법문학부 철학과 5회(1933) 졸업생으로서 한국의 ‘철학 1세대’에 속하는 학자이며, 일제 강점기 숭실전문학교 교수 생활을 하였고(1934. 9. 12-1938. 3. 31), 숭실전문학교가 신사참배를 거부하였다는 것 때문에 일제가 숭실전문학교를 폐교시켜 조선일보 사회부·학예부 기자 생활을 하게 되었고(1938. 4. 1-1940. 8. 10) 조선일보가 폐간될 때까지 사회평론 활동에 종사했던 언론인이었다. 조선일보가 폐간되기 직전 경성제국대학 철학과 대학원에 고대철학 연구를 위해 입학하였고(1940. 6) 1943년 어느 날 중국으로 탈출하였다. 해방 후 현대일보 발행인·주필(1946. 3. 25-1946. 9. 6)로서 청년 학생을 대상으로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접선에서 모험적인 문필 활동을 전개했으며, 문학가동맹 및 민족민주전선 등에서 활동하였고,

박치우는 누구인가? 박치우는 경성제대 법문학부 철학과 5회(1933) 졸업생으로서 한국의 ‘철학 1세대’에 속하는 학자이며, 일제 강점기 숭실전문학교 교수 생활을 하였고(1934. 9. 12-1938. 3. 31), 숭실전문학교가 신사참배를 거부하였다는 것 때문에 일제가 숭실전문학교를 폐교시켜 조선일보 사회부·학예부 기자 생활을 하게 되었고(1938. 4. 1-1940. 8. 10) 조선일보가 폐간될 때까지 사회평론 활동에 종사했던 언론인이었다. 조선일보가 폐간되기 직전 경성제국대학 철학과 대학원에 고대철학 연구를 위해 입학하였고(1940. 6) 1943년 어느 날 중국으로 탈출하였다. 해방 후 현대일보 발행인·주필(1946. 3. 25-1946. 9. 6)로서 청년 학생을 대상으로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접선에서 모험적인 문필 활동을 전개했으며, 문학가동맹 및 민족민주전선 등에서 활동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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