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Curation for evaluation]

[평가용 보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고, 추한 것을 배척한다. 특히 여자와 관련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미녀는 모든 이의 관심을 끌지만 대부분의 추한 여자들은 배척당한다. 그리하여 추한 여자들은 아름다워지기를 바랐고, 과학 기술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는 성형 수술에 중독되거나 거식증에 걸린 여성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추한 것은 반드시 배척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남들이 추하다고 하는 그 여자, 그녀는 정말 추한가? 그녀의 모든 것은 정말 추해서 시선과 마음을 줄 가치가 없는가? 추한 여자들이 보여주는 진실, 그리고 추함의 가치를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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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 미술관.  그림 속 여인의 자세는 얼핏 보기에 비너스와 유사하지만 이 여인은 결코 비너스가 아니다. 이 여인은 여신의 반대라고 할 수도 있을, 창부이다. 각진 턱, 차가운 표정, 살짝 나온 아랫배. 추한 외모와 추한 신분.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남성들은 꽃다발을 보낸다. 진짜 추한 것은 누구인가? 이 그림 속 추한 여인은 현실 속 사회상의 추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Edouard Manet Olympia, 1863 Oil on canvas H. 190 cm Paris, Musée d'Orsay offered to the French State by public subscription initiated by Claude Monet, 1890 © RMN-Grand Palais (Musée d'Orsay) / Hervé Lewandowski

페테르 파울 루벤스, "메두사의 머리", 1618년경, 캔버스에 오일, 빈 미술사 박물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두사를 테마로 그린 그림이다. 원래 메두사는 머리카락이 아주 아름다웠지만 아테나의 질투를 사는 바람에 아테나가 메두사의 머리를 뱀으로 만들어버렸다. 이후 페르세우스에 의해 목이 잘리는데, 잘린 메두사의 목을 그린 그림이다.    신화는 고대부터 꾸준히 이용되어 온 좋은 소재이다. 그 중 메두사는 추한 여자(여성형 존재)로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뱀들로 가득찬 머리와 시선을 마주치는 사람을 돌로 만들어 버리는 눈이라는 특징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추하다고 할 수 있다.

The Head of Medusa 1617 Peter Paul Rubens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ustria

게오르그 그로츠, "타틀린적인 도표", 1920, 티센-보르네미자 미술관.    그로츠는 정치 의식이 드러난 그림을 많이 그렸다. 민중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자처럼 부르주아를 비판하는 요소를 그리기도 했지만 동시에 퇴폐적인 문화와 우리가 사는 게걸스러운 모습의 세계를 풍자하였다.    그림의 중심부 하단에 창녀가 있다. 볼록 나온 아랫배, 매우 두꺼운 허벅지가 그녀를 더욱 추하게 한다. 나체의 몸 꼭대기에 얹은 모자, 그 모자의 색에 대비되는 빨간색 안경이 그녀를 더 우스꽝스럽고 음란하게 보이게 한다. 그녀는 자신 앞에서 음흉하게 웃고 있는 남자를 향해 자신의 한쪽 젖가슴을 잡아 내보이면서도 자신을 힐긋거리는 뒤편의 남자를 쳐다보고 있다. 지극히 상품화된 성, 이는 곧 사회의 추한 단면이다. 그러다가 조금 거리를 두고 고개를 살짝 들면 검은 배경 앞 발가벗은 또다른 창녀의 상반신이 보인다.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이 몽환적이다. 마치 유령처럼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게오르그 그로츠, "타틀린적인 도표", 1920, 티센-보르네미자 미술관. 그로츠는 정치 의식이 드러난 그림을 많이 그렸다. 민중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자처럼 부르주아를 비판하는 요소를 그리기도 했지만 동시에 퇴폐적인 문화와 우리가 사는 게걸스러운 모습의 세계를 풍자하였다. 그림의 중심부 하단에 창녀가 있다. 볼록 나온 아랫배, 매우 두꺼운 허벅지가 그녀를 더욱 추하게 한다. 나체의 몸 꼭대기에 얹은 모자, 그 모자의 색에 대비되는 빨간색 안경이 그녀를 더 우스꽝스럽고 음란하게 보이게 한다. 그녀는 자신 앞에서 음흉하게 웃고 있는 남자를 향해 자신의 한쪽 젖가슴을 잡아 내보이면서도 자신을 힐긋거리는 뒤편의 남자를 쳐다보고 있다. 지극히 상품화된 성, 이는 곧 사회의 추한 단면이다. 그러다가 조금 거리를 두고 고개를 살짝 들면 검은 배경 앞 발가벗은 또다른 창녀의 상반신이 보인다.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이 몽환적이다. 마치 유령처럼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타데우스 쿤츠, "포르투나 : 행운의 여신", 1754, 캔버스에 유채, 바르샤바 국립박물관.    과거 사람들은 행운의 여신이 추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종종 행운의 여신은 눈이 가려진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림의 중심에 행운의 여신이 서 있다. 하지만 얼핏 보기에는 그녀의 독특한 분위기와 눈을 가린 특이한 외모가 돋보일 뿐 여신처렴 느껴지지 않는다. 정리되지 않은 머리가 거칠게 휘날리고 있는데다가 그림 전체의 분위기는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연상시킨다.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우리는 행운과 맞닥뜨려도 행운을 잘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다. 행운의 여신인 그녀는 추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와 우연히 만나도 그녀의 추한 모습 때문에 그녀를 쉽게 지나쳤고, 지나치고 있으며, 지나칠 것이다.

Tadeusz Kuntze-Konicz – Fortune and Art - Full Resource Library of Art and Artists from Poland - Culture.

렘브란트, "디모데와 그의 할머니", 1648, 패널에 유채, 엘즈미어 백작 컬렉션.   나이를 먹지 않는 여신이 아닌 한, 모든 여자들은 나이를 먹어 노파가 된다. 나이를 많이 먹은 여자는 자연스럽게 외모가 추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다. 나이를 먹음으로써 외모는 추해질언정 내면은 더 성숙해지고 지혜로워진다.  추한 외모로 변화하는 과정 속에 가치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Shop Timothy And His Grandmother By Rembrandt Harmensz. Poster created by Artcollection.

<주제그림> 이이남, 진주귀걸이 - 할머니, 2010년, 비디오/설치미술, LED TV, 2분 35초.    아름다운 여성이든, 아름답지 않은 여성이든, 외모도 신분도 추한 여성이든, 모든 여자들은 늙는다.

<주제그림> 이이남, 진주귀걸이 - 할머니, 2010년, 비디오/설치미술, LED TV, 2분 35초. 아름다운 여성이든, 아름답지 않은 여성이든, 외모도 신분도 추한 여성이든, 모든 여자들은 늙는다.

에드가 드가, 욕조, 1886, 캔버스에 유채,오르세 미술관.    열쇠구멍을 통해 쳐다보는 것만 같은 구도가 특이하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추한 부분까지를 포함한 일상적인 모습을 꾸미지 않고 그려낸 작품이다.     헝클어진 머리, 펑퍼짐한 엉덩이, 조금도 아름답거나 우아하지 않은 자세. 그림 속의 모델은 그저 몸을 닦는 데 열중할 뿐이다. 그런데 자세를 주목해보자. 저 자세에서 아름답기 위해서는 어떤 몸을 가져야할까? 왠만큼 인형같은 몸이 아니고서야 저런 자세를 취하면 당연히 기품없어 보이고 허벅지의 살들이 강조되어 보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살면서 그림 속 자세, 혹은 다른 자세들을 한 번도 취하지 않고 살아가는 여자들이 있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렇듯 추한 모습은 현실의 단면을 이룬다.

Edgar Degas Woman Washing in the Tub Art Print Poster Poster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 1863,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 미술관.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일컫어지는 마네의 작품이다. 가식적인 프랑스 사회의 이중적 도덕성을 풍자한 그림인데, 과거와 변화된 여성을 묘사하고 있다.     입을 벌린 채 누군가를 대놓고 쳐다보는 우아하지 못한 표정, 여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무 천도 걸치지 않은 데다가 접친 뱃살과 두터운 다리를 그대로 드러내놓은 모습이 충격적이다. 그림 속 여성은 전혀 아름답게 그려지지 않았다.  보수적인 관객들이 질색을 하며 싫어하기에 아주 알맞은 작품이다. 구도는 지극히 고전적이지만, 사실적인 여인의 누드는 너무도 자극적이다. 이 그림속 여인의 '추'는 마네가 활동하던 당시 권위를 누리던 살롱에 대한 일종의 공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Édouard Manet Le Dejeuner sur l’herbe, 1863 oil on canvas x ” Louvre,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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