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 미술관.  그림 속 여인의 자세는 얼핏 보기에 비너스와 유사하지만 이 여인은 결코 비너스가 아니다. 이 여인은 여신의 반대라고 할 수도 있을, 창부이다. 각진 턱, 차가운 표정, 살짝 나온 아랫배. 추한 외모와 추한 신분.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남성들은 꽃다발을 보낸다. 진짜 추한 것은 누구인가? 이 그림 속 추한 여인은 현실 속 사회상의 추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Edouard Manet Olympia, 1863 Oil on canvas H. 190 cm Paris, Musée d'Orsay offered to the French State by public subscription initiated by Claude Monet, 1890 © RMN-Grand Palais (Musée d'Orsay) / Hervé Lewandowski

타데우스 쿤츠, "포르투나 : 행운의 여신", 1754, 바르샤바 국립박물관.    과거 사람들은 행운의 여신이 추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종종 행운의 여신은 눈이 가려진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림의 중심에 행운의 여신이 서 있다. 하지만 얼핏 보기에는 그녀의 독특한 분위기와 눈을 가린 특이한 외모가 돋보일 뿐 여신처렴 느껴지지 않는다. 정리되지 않은 머리가 거칠게 휘날리고 있는데다가 그림 전체의 분위기는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연상시킨다.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우리는 행운과 맞닥뜨려도 행운을 잘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다. 행운의 여신인 그녀는 추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와 우연히 만나도 그녀의 추한 모습 때문에 그녀를 쉽게 지나쳤고, 지나치고 있으며, 지나칠 것이다.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는 눈을 가린 채 가난한 이에게도, 부유한 이에게도, 그 어떤 사람에게도 우연한 기회에 찾아간다. 우리는 그녀의 추한 모습을 꿰뚫어 볼 수 있는가?

Tadeusz Kuntze-Konicz – Fortune and Art - Full Resource Library of Art and Artists from Poland - Culture.

게오르그 그로츠, "타틀린적인 도표", 1920, 티센-보르네미자 미술관.    그로츠는 정치 의식이 드러난 그림을 많이 그렸다. 민중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자처럼 부르주아를 비판하는 요소를 그리기도 했지만 동시에 퇴폐적인 문화와 우리가 사는 게걸스러운 모습의 세계를 풍자하였다.    그림의 중심부 하단에 창녀가 있다. 볼록 나온 아랫배, 매우 두꺼운 허벅지가 그녀를 더욱 추하게 한다. 나체의 몸 꼭대기에 얹은 모자, 그 모자의 색에 대비되는 빨간색 안경이 그녀를 더 우스꽝스럽고 음란하게 보이게 한다. 그녀는 자신 앞에서 음흉하게 웃고 있는 남자를 향해 자신의 한쪽 젖가슴을 잡아 내보이면서도 자신을 힐긋거리는 뒤편의 남자를 쳐다보고 있다. 지극히 상품화된 성, 이는 곧 사회의 추한 단면이다. 그러다가 조금 거리를 두고 고개를 살짝 들면 검은 배경 앞 발가벗은 또다른 창녀의 상반신이 보인다.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이 몽환적이다. 마치 유령처럼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The ~ Artworks of George Grosz and containing the word george grosz, dadaism, new york

이이남, 진주귀걸이 - 할머니, 2010년, 비디오/설치미술, LED TV, 2분 35초.

이이남, 진주귀걸이 - 할머니, 2010년, 비디오/설치미술, LED TV, 2분 35초.

디에고 벨라스케스, "계란을 부치는 노파", 1618, 캔버스에 유채, 국립 스코틀랜드 미술관.

Diego Velázquez - Vieja friendo huevos English: Old Woman Frying Eggs). National Gallery of Scotland, Edinburgh. -example of baroque painting.

레오나르도 다 빈치, "터번을 쓴 그로테스크한 노파", 15세기경, 펜(데생)과 갈색 잉크, 루브르 박물관.

레오나르도 다 빈치, "터번을 쓴 그로테스크한 노파", 15세기경, 펜(데생)과 갈색 잉크, 루브르 박물관.

알퐁스 마르셀 자크, "노파의 흉상", 19세기경, 구운 진흙색의 고풍기법,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

알퐁스 마르셀 자크, "노파의 흉상", 19세기경, 구운 진흙색의 고풍기법,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

디에고 벨라스케스, "계란을 부치는 노파", 1618, 캔버스에 유채, 국립 스코틀랜드 미술관.

Diego Velázquez - Vieja friendo huevos English: Old Woman Frying Eggs). National Gallery of Scotland, Edinburgh. -example of baroque painting.

게오르그 그로츠, 자동인형 조지와 결혼했다, 1920년,  베를린 갤러리.  그림 왼편에 있는 모자를 쓴 여인이 그로츠의 아내 루이제 페터다. 여인의 흰 속옷은 신혼을 암시한다. 그런데 외음부가 노출되어 있는데, 이는 여자가 결혼한 후에는 성적 욕구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뜻한다. 반대로 남자는 결혼 후에 성욕이 아닌 현실적 문제에 관심을 보인다는 뜻으로 기계로 묘사되어 있다.  성적으로 솔직하다는 것은, 추한 것일까? 신혼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그려지지 아니한 대신에, 여인은 두꺼운 팔과 다리, 퀭한 눈을 가지고 있다. 한편 그녀의 상기된 볼은 성적 욕망이 일어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결혼하고나서 '안정적으로' 성적 욕망을 해결할 수 있게 됨으로써 여성이 더욱더 성행동에 탐닉하게 되는 것을 그린 것 같다. 과유불급.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 그래서 이 여인은 아름답게 그려지지 않았다.

Daum marries her pedantic Automaton George in May John Heartfield is very glad of it, 1920 Watercolor and collage, 42 x cm Galerie Nierendorf, Berlin, German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 1863.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일컫어지는 마네의 작품이다. 가식적인 프랑스 사회의 이중적 도덕성을 풍자한 그림인데, 과거와 변화된 여성을 묘사하고 있다.     입을 벌린 채 누군가를 대놓고 쳐다보는 우아하지 못한 표정, 여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무 천도 걸치지 않은 데다가 접친 뱃살과 두터운 다리를 그대로 드러내놓은 모습이 충격적이다. 그림 속 여성은 전혀 아름답게 그려지지 않았다.  보수적인 관객들이 질색을 하며 싫어하기에 아주 알맞은 작품이다. 구도는 지극히 고전적이지만, 사실적인 여인의 누드는 너무도 자극적이다. 이 그림속 여인의 '추'는 마네가 활동하던 당시 권위를 누리던 살롱에 대한 일종의 공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Édouard Manet Le Dejeuner sur l’herbe, 1863 oil on canvas x ” Louvre, Paris

이쾌대, "군상", 1948-49년.    이 그림은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난 뒤의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분위기가 절망적이고 불안하지만, 실은 모두 화합자는 희망적 메세지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신화, 성경적 테마 같은 고전적 요소에 대한 반발도 아니고 일상적인 모습을 포착한 것도 아니다. 사회적 혼란을 추한 나체의 사람들로 표현한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그림에 남자들도 있으므로 추한 여자만을 다룬 그림은 아니지만, 작가의 의도가 별다른 지식 없이도 잘 드러난다는 점에서 특별히 골랐다. 여성들을 보라. 그들의 모습을 보면 어린 여동생과 중년의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그들의 가난과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들은 추한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왜 추하게 그려졌는지 깨달을 때 보는 이들의 마음에 작고 가는 상처를 남긴다. 우리는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그림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쾌대, "군상", 1948-49년. 이 그림은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난 뒤의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분위기가 절망적이고 불안하지만, 실은 모두 화합자는 희망적 메세지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신화, 성경적 테마 같은 고전적 요소에 대한 반발도 아니고 일상적인 모습을 포착한 것도 아니다. 사회적 혼란을 추한 나체의 사람들로 표현한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그림에 남자들도 있으므로 추한 여자만을 다룬 그림은 아니지만, 작가의 의도가 별다른 지식 없이도 잘 드러난다는 점에서 특별히 골랐다. 여성들을 보라. 그들의 모습을 보면 어린 여동생과 중년의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그들의 가난과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들은 추한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왜 추하게 그려졌는지 깨달을 때 보는 이들의 마음에 작고 가는 상처를 남긴다. 우리는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그림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우유를 따르는 여인", 1659-60, 캔버스에 유채, 레익스 박물관.  식기 세척기와 세탁기가 없었던 시대에 여인은 일일이 무거운 도자기 접시 따위들을 씻고 수많은 옷을 빨아야했을 것이다. 그러한 집안일로 다져진 몸. 이런 몸을 두고 단순히 추하다고 할 수 있을까?

Vermeer The Milkmaid - Framed Giclee Canvas Art S

"The Milkmaid ("De Melkmeid" or "Het Melkmeisje"), sometimes called "The Kitchen Maid," is an oil-on-canvas painting by the Dutch artist Johannes Vermeer/Vermeer van Delft. It is housed in the Rijksmuseum in Amsterdam, Nether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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